4장 : 우리가 믿는 보혜사 성령 - 성령론(聖靈論)
1. 한국교회 성령운동 이대로 좋은가?
우리나라 교회는 세계선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적인 부흥성장을 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경이적인 성장의 원동력이 성령의 역사라고 본다.
성령운동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1907년 평양에서 시작된 성령운동으로 본다.
그 이후 강약의 차이는 있었지만, 100여년동안 꾸준히 계속되어 오다가 1970년에 와서 급격한 교회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은 부성적(父性的) 특징과 모성적(母性的) 특징으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부성적 특성은 유교적 전통과 관계를 가지고 있고, 모성적 특성은 무속적 전통과 관계가 깊은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성적 성령운동은 사회 지향적이고 투쟁적이고 이지적이고 남성적이다.
그래서 사회구원을 위한 사회참여 쪽으로 흘러갔고, 모성적 성령운동은 개인 지향적이고 포용적이며 병든 백성들을 치유하고 기복신앙을 부추기며 여성적 운동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을 가진 성령운동은 상호갈등 관계를 가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상호보완해서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부성적 운동이든 모성적 운동이든 각각 나름대로 기여한 바가 크다고 평가하지만, 문제점도 많았다.
같은 성령을 받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다른 영을 받은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행동을 만들어 내는 종교적 배경이 있다고 본다.
유교적 전통과 이지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부성적 운동을 한다면, 무속적인 불교와 도교의 전통과 감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모성적 운동을 좋아한다고 본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운동을 다시 점검하여서 올바른 내용과 방향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성령은 한 분이시지만, 성령의 은사는 각각이고, 역사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그러므로 자기와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정죄하거나 경멸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성격과 문화적 전통 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도 다양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성령의 역사냐? 인령(人靈)의 역사냐? 악령의 역사냐? 하는 것을 구별하고 혼합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건전한 성령운동의 방향을 설정해 나가야 한다.
적극적으로 사회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이나 개인적인 기복신앙과 신비체험 쪽으로 열심을 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같이 방향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개인과 사회를 구별하지 말며 영과 육을 나누지 말고 총체적이고 통전적인 이해를 가지고 성령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다른 살림을 차리는 불행을 극복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다양한 운동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병들어 죽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구원하는 전도운동과 병들어 무너져가는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서 성령의 능력을 받은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사회개혁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주의 성령이 충만히 임하여서 강렬한 사랑의 실천운동이 일어나고 맹렬한 바른 삶 실천운동이 일어나고, 그리스도인 윤리 실천운동이 일어나서 성령의 열매를 거두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령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성령체험」이라고 해서 성령의 개인적인 체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사람의 개인적 체험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을 확대하고 보편화시켜서 그 경험을 성경보다 우위에 놓는 잘못이다.
또한 치병, 축귀, 환상 같은 것을 극대화시키고 모든 성경 귀절을 그 체험을 풀이하고 증거 하는데 인용하려 하는 것도 잘못이다.
우리는 언제나 성경이 표준이고, 그리스도가 모든 진리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 안에서 성령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성령경험을 해야 하며 신구약 성경에 기초를 두고 2천년 교회역사에 나타난 성령운동의 내용과 방향과 성격을 바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앞으로 성령론 해설을 전개하려고 한다.